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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와이

하와이 2탄 #폴리네시안 #하나우마베이 #다이아몬드헤드

하와이 이튼날... 오늘의 일정은 폴리네시안 문화센터를 가지는 것이 주 일정이다. 점심부터 저녁까지 폴리네시안 문화센터의 프로그램을 이용 할 것이기 때문에... 아침 일찍 나와서 해안 도로를 따라 이곳 저곳을 둘러 보기로 했다. 

 

보시는 것 처럼.. 해안도로를 따라 이곳 저곳 방문 했는데... 3~4시간 정도 소요 되었던 것 같아요. 아무것도 안한다면야~ 좀 더 빨랐겠지만... 사진도 찍고 해야 하니까~ ^^

 

  • Diamond Head Lookout / 정상은 추자장에서 30분 도보
    다이아몬드 헤드 화산은 하와이 제도의 산이다. 사화산이며, 정상에는 거대 분화구(소규모 칼데라 지형)가 있다. 옛날에 일어난 화산폭발로 지금의 모습이 형성되었다.다이아몬드 헤드산이라 불린 이유는 항해하다 들어오면 산이 반짝거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 하나우마베이  Hanauma Bay / 화산폭발분화구, 물고디, 스노클링 다이빙 최적장소, 오전6시~오후6시, 매주 화요일 폐장
    산호초가 파도와 거친 해류를 막아주기 때문에 스노클링을 즐기기에 최고인 장소다. 스노클링만으로도 충분히 열대어와 산호초를 만날 수 있다.
  • 코코너츠 쉐이브 이스 & 스낵스 ;Kokonuts Shave Ice & Snacks : 하와이출신 오바마가 자주 갔던 곳

다이아몬드 헤드 전망대 (Diamond Head Lookout

다이아몬드헤드 전망대... 경치도 좋고 바람도 좋고... 누님들도 좋아하네요~ ^^

 


코코너츠 쉐이브 이스 & 스낵스 (Kokonuts Shave Ice & Snacks)

 

다이아몬드헤드 전망대에서 하나우마베이 가는길에 크지 않는 아울렛 쇼핑몰 단지가 있는데 그 안에 있는 조그마한 가게 입니다. 한국인이 하는 듯 하구요. 팝빙수 맛있어요 ^^

이곳은 하와이 출신의 미국 대통령... 오마바 대통령이 즐겨 찾았던 곳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보이시나요? 오바마 사진~ ^^

 

 


하나우마 만 (Hanauma Bay)

아쉽게도 물에 몸은 못 담겄어요. 폴리네시안 문화센터 가는길에 처음 방문한 건 일요일?인가 였고.. 다시 방문하려고 간날 화요일... 그런데 하나우마베이는 화요일 정기 휴무일 입니다. ㅠㅠ

그래도 보지 못했다면 정말 후회 했을 먼진 곳~ ^^

 

하나우마베이를 다시 찾은 이유는 와이키키비치의 경우 수심이 좀 있어서 수영을 못하는 누님들이 좀 무서워 했고 물놀이가 제대로 안되었는데.. 이곳은 수심도 낮고 약간의 파도도 있어 물놀이하기 최적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찾았는데... 휴무일..ㅜㅜ

 

어디서 퍼온 사진 아니구요~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인데.. 뭐~~ 끝내 주지요? ^^

 


폴리네시안 민속 문화센터 (Polynesian Cultural Center)

 

 

폴리네시안 문화센터에서 가장 유명한.. 하(HA)쇼.  Ha:인생의 숨결

볼만은 하지만... 약간 지루하다는...

 

HĀ: BREATH OF LIFE.
삶의 열정에 관한 이야기, 숨막히는 불쑈와 화려한 댄스 퍼레이드

쇼 소개
총 약 100명의 캐스팅으로 이루어진 하와이 최고의 이브닝 쇼 'HĀ : 브레스 오브 라이프 "
뜨겁고 긴장이 가득한 파이어 나이프 댄스와 훌라 등 폴리네시아 춤과 음악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주인공 마나가 태어나 하와이, 통가, 뉴질랜드, 사모아, 타히티, 피지 각각의 폴리네시안 문화들을 통해 삶의 기쁨과 시련을 경험합니다. 이야기는 탄생 후 배움과 성장, 청춘과 인생의 동반자와의 만남 그리고 시련, 죽음, 그리고 새 생명의 탄생을 통해 인생에서 누구나 경험하는 보편적인 삶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였습니다. 애니메이션 그리고 춤과 음악을 통해 문화와 언어가 달라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감동의 쇼입니다.

줄거리
폭풍 속에서 나뭇잎처럼 바다에 떠있는 한 척의 카누가 섬에 도착합니다. 주인공 마나와 부모가 표착 한 장소는 통가입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지역 사회의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장소가 바뀌고 하와이에서 어린 마나는 전통적인 아이의 성장을 축하 받습니다. 그리고 뉴질랜드에서 마나는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합니다. 사모아에서 라니라는 아름다운 소녀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라니 가족에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낭만적인 타히티에서 결혼 의식을 하며 전통 결혼의 모습을 화려하게 보여줍니다. 피지는 부족 간의 투쟁에 휘말려 마나는 아버지를 잃는 슬픔을 겪게 됩니다. 후에 마나와 라니의 사이에 아이가 탄생하고 새로운 이야기가 다시 시작됩니다.

공연 시간 : 오후 7시 30분 (소요시간 90분)

 

 

오후 1시쯤부터 폴리네시안 문화센터를 가이드와 함께 둘러보고 나면 저녁 식사를 하고 '하(ha)' 저녁 공연까지 시간이 좀 남는데.. 그 때 버스를타고 주변에 잠깐 관광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아무 생각없이 나섰는데... 알고 보니~ 특정 종교에서 운영하는 학교와 성지순례 였던 것~ ㅠㅠ

나름 잘 보긴해서 후회는 없었는데... 폴리네시안문화센터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상당 부분이 이 종교의 신자라고 한다.

그 종파는... 한국에서는 몰몬교.. 불리우는 나름 유명한 교파로... 생각의 차이는 있겠으나 본인은 대한예수교장로회 교인으로 일단 이단으로 본다는...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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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모르몬교(Mormonism)라고 불리며, 한국에서는 정식 명칭을 말일성도(末日聖徒) 예수그리스도 교회로 하다가 2005년 7월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後期聖徒) 교회로 바꾸었다. 약칭으로는 ‘예수그리스도 교회’라고 한다. 1830년 미국 뉴욕주의 맨체스터에서 조지프 스미스 2세(Joseph Smith, Jr.)와 동료 6명에 의해 초기 기독교 교회의 권위와 조직을 회복하겠다는 것을 목표로 창건되었다. 처음 창건될 당시에는 ‘그리스도의 교회(Church of Christ)’,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Church of Jesus Christ)’, ‘하느님의 교회(Church of God)’ 등의 명칭을 사용했으나, 1834년부터 ‘후기성도교회(Church of Later Saints)’라고 불렀고 1838년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 Day Saints, LDS Church)’라는 이름을 공식 명칭으로 정해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다.

미국 북동부 뉴잉글랜드 지방의 버몬트(Vermont) 출신인 조지프 스미스 2세는 19세기 초에 미국에서 일어난 이른바 ‘제2차 대각성’이라고 불리는 기독교 부흥기에 추종자들과 함께 뉴욕에서 후기성도교회를 창시했다. 그는 1823년 숲에서 기도를 하다가 천사 모로나이(Moroni)에게 고대 기록이 담긴 금판을 얻어 신에게 신권(神權)과 교의(敎義)를 회복하는 사람으로 선택되었다고 주장했으며, 1830년 금판에 새겨진 글을 번역했다는 ≪모르몬경(Book of Mormon)≫을 펴내며 본격적으로 전도 활동을 시작했다. 1831년에는 미국 중서부 오하이오주의 커트랜드(Kirtland)로 교회 본부를 옮기고, 초기 기독교 공동체를 본뜬 에녹협동교단(United Order of Enoch)을 세워 교세를 넓혔다. 그리고 1836년에는 미주리의 콜드웰 카운티(Caldwell County)에 파웨스트(Far West)라는 정착촌을 세워 새로운 종교 공동체를 세우려고 했으나, 그곳 주민들과 무장 충돌까지 벌어지는 갈등을 빚어 1839년 미시시피 강 유역인 일리노이의 핸콕 카운티(Hancock County)로 옮겨 나우부(Nauvoo)라는 종교 공동체를 세웠다. 후기성도교회의 종교 공동체는 독자적인 신정정치(神政政治)를 따르고 있었으므로 이곳에서도 교회 밖의 주민 조직과 갈등을 빚었고, 결국 1844년 조지프 스미스 2세는 형인 하이럼 스미스(Hyrum Smith)와 함께 비(非)후기성도교회 주민들로 구성된 민병대에 살해되었다.

조지프 스미스 2세가 피살된 뒤에 모르몬교인들은 브리검 영(Brigham Young)을 후계자로 삼아 1847년 로키산맥 너머 유타주의 솔트레이크시티(Salt Lake City)로 옮겨 정착하였고 교세를 크게 확장하였다. 후기성도교회의 신도들은 서부의 여러 도시들을 개척하고 정착하는 데 성공했으며, 브리검 영은 유타 주의 초대 지사를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1857년 후기성도교회의 신정정치와 일부다처제의 관습을 둘러싸고 교회 밖의 주민들과 갈등이 확대되면서 무장 충돌이 벌어졌고, 급기야 연방에서 파견된 군대와 자위권을 행사하려는 후기성도교회 민병대 사이에 교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평화협상으로 브리검 영은 1858년 알프레드 커밍(Alfred Cumming)에게 주지사 자리를 물려주었다. 그러나 원래 멕시코의 영토였던 유타주는 1896년에야 미국의 정식 주로 편입되었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후기성도교회의 영향력은 계속해서 크게 나타났다. 오늘날에도 유타 주 주민의 60% 정도가 후기성도교회의 교인으로 조사된다.

후기성도교회는 교회가 고대 성경 시대와 같은 조직과 신앙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성경 시대와 마찬가지로 일부다처제의 관습을 유지해 왔는데, 이는 교회 밖의 사람들과 갈등을 빚는 하나의 요인이 되기도 했다. 1889년 미국 정부는 후기성도교회의 일부다처제가 국법에 위배된다며 교회의 모든 재산을 동결하였다. 그러자 후기성도교회의 4대 회장인 윌포드 우드러프는 1890년 교회가 더 이상 일부다처제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선언문을 발표하였고, 1904년에는 6대 회장인 조지프 F. 스미스 시니어가 일부다처제를 옹호하는 교인에 대해서는 파문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아래의 학교는  Brigham Young University–Hawaii

 

이곳은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교인분들답게.. 아주 친절하게 모르몬교에 대하여 설명 해 주었는데... 크게 와닿진 않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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